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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호의 섬유역사산책 3
▣ 공복제도 도입과 고려시대 옷 풍속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의하면, 918년 왕건에 의해 건국된 고려는 959년 광종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백관(고위직 공무원)의 근무복인 ‘고려의 공복제도’가 도입되기에 이르렀다고 하며, 975년 고려 경종 때에는 직관(職官)과 산관(散官) 등 일반 공무원에게도 각 품계에 따라 구별이 되는 옷을 입게 하였다고 한다. 이때 ‘관품(직위)의 높고 낮은 것은 논하지 아니하고, 다만 인품으로써 그 차이를 구분하게 하게’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983년 고려 성종 때에 군인의 복색이 제정되었다고 하며, 1071년 고려 문종 때 예복제도의 추가적 도입 등 일부 공복제도를 조정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공복제도가 도입 이전까지 고려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전시대의 나라인 신라의 복식풍습을 원용한 의복을 즐겨 입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981년 고려 성종 때 재상인 최승로는 ‘신라 때에는 공경백관, 그리고 서민의 의복, 신발, 버선이 각기 품색이 있어, 공경백관은 조회할 때에는 공복을 입었고, 가죽신을 신었고, 홀(笏 ; 관리가 지닌 신표)을 가졌으나 조회에서 물러나오면 편리한 대로 옷을 입었으며, 서민은 문채(누늬가 있는 빛깔)가 있는 옷을 입지 못하게 했으니 이는 귀천을 구별하고 존비를 분별한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공복은 비록 토산제품은 아니라 하더라도 백관들 스스로가 준비해 썼던 것입니다.
우리 왕조에서는 태조 이후로 귀하고 천한 것은 논하지 아니하고, 공복을 마음대로 입고 있으니 벼슬이 비록 높다 하더라도 집이 가난하면 공복을 능히 갖추지 못하고, 비록 관직은 없더라도 집만 넉넉하면 고급 견직물인 능라(綾羅)나 금수(錦繡)를 사용하고 있아옵니다. 우리나라의 토산제품은 좋은 물건이 적고 나쁜 물건이 많사온데, 문채가 있는 물건은 모두 토산제품이 아닌데도 사람마다 이를 입게 된다면 다른 나라 사신을 영접할 때에 백관의 예복이 법대로 되지 않아서 수치를 당할까 염려됩니다.
원하옵건대, 백관으로 하여금 조회할 적엔 한결같이 중국과 신라의 제도에 의거하여 공복을 입고, 가죽신을 신고, 홀을 가지게 하고, 조정에서 일을 아뢸 때는 버선을 신고, 직물로 만든 신과 가죽신을 신게 하며, 서민은 문채가 있는 깁과 주름진 견직물을 입지 못하게 하고 다만 굵은 견직물만 사용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라고 임금에게 고하였다.
이어서 또한 최승로는 임금에게 아뢰기를 ‘그러나 우리가 중국의 제도를 전혀 따르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나라 각 지역의 습속이 각기 그의 토성(土性 ; 지방 풍속)에 따르게 되니 다 고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악과 시서의 가르침, 군신관계, 부자의 도리는 마땅히 중국을 본 받아 우리의 비루한 풍속을 고쳐야 되겠지만, 그 밖의 거마(車馬 ; 수레)나 의복의 제도는 마땅히 우리 지방의 고유한 풍속대로 하여 사치함과 검소함을 알맞게 하여야 할 것이며, 구태여 중국과 같이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라 하였다 한다.
고려시대 유교 정착에 공을 들인 최충(崔沖, 984-1068년)에 의해 유교의 복식제도가 고려에 도입되기도 하였으며, 1113년 고려 예종 때에는 중국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안직숭이 송나라의 악기와 궁중음악 악보와 함께 몇몇 의복을 가져옴으로서 새로운 복식문화가 고려에 유행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에 1274년 고려 충렬왕 때 태사국(太史局)에서 아뢰기를 ‘동방(고려를 지칭하는 말)은 5행 중 목(木 ; 나무)의 위치이니 푸른 빛깔을 숭상하여야 하며, 하얀 빛깔은 5행 중 금(金 ; 쇠)의 빛깔인데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군복(軍服)으로 하얀 빛깔로 된 삼베옷을 많이 입으니 이것은 목이 금에 제어되는 형상입니다. 따라서 하얀 빛깔로 된 의복 입기를 금하기를 청하옵니다’ 하니 임금이 그의 말을 따라 그대로 시행하게 하였다고 한다.
| ▲ 고려복식을 입은 원나라, 명나라 왕실과 귀족 © TIN 뉴스 | |
고려 충렬왕 때부터 일백여년간 고려는, 강압에 의해 중국 원나라의 복식인 호복(胡服)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게 되며, 이때 재상으로부터 하급관리, 일반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들의 머리도 원나라의 풍습처럼 깍게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원나라의 복식제도와 생활 풍습은 고려말기에 이르러 포은 정몽주의 건의에 의해 마침내 폐지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중국 원나라의 속박에서 벗어난 고려는 공민왕(1351-1374년) 때 사천소감 우필홍이 임금에게 상서하기를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끝나는데 그 형세가 수근목간(水根木幹 ; 물과 나무로 이루어짐)의 땅으로서 까만 빛깔을 부모로 하고 파란 빛깔을 자기 몸으로 하는 것이니 토(土 ; 흙)에 순응하면 창성하고 토를 거슬리면 재난을 입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문무백관은 흑의청립(黑衣靑笠 ; 까만 빛깔의 옷에 파란 빛깔의 모자)을 하게 하고, 승복(僧服 ; 중의 의복)은 흑건대관(黑巾大冠 ; 까만 빛깔의 큰 모자)으로 하게 하며, 여복(女服 ; 여자들의 의복)은 까만 직물로 할 것이며, 또 모든 산에는 소나무를 심어 무성하게 하며, 모든 그릇은 유(鍮 ; 놋쇠그릇), 동(銅 ; 구리그릇), 와기(瓦器 ; 흙그릇)를 사용하여서 풍토에 순응하게 하소서’하니 임금이 그의 건의를 그대로 따르게 하였다고 한다.
▣ 고려시대 임금의 옷 빛깔에 대하여
1058년 문종 때 예사에서 아뢰기를, ‘예식을 갖출 때의 어복(御服 ; 임금의 옷)은 마땅히 붉고 노란 빛깔로 된 것이 마땅합니다. 율력지(책 이름)에 의하면 노란 빛깔은 중(中 ; 가운데. 중심)의 빛깔로 임금의 복색(服色)이라 하였고, 중국 당나라 역사서에도 천자(天子)의 옷에는 적색(赤色), 황색(黃色)만을 사용하게 함으로, 사서인(일반인)은 이 3가지 노란 빛깔로 는 옷을 만들지 못하도록 금하라 하고 있습니다.
또 매월 초하룻 날 조하(朝賀 ; 조회)를 받을 때에는 임금은 강사의(絳紗衣 ; 붉은 빛깔로 된 견직물의 옷)를 입는다 하고 있고, 개원례에는, 황제가 환구(圓丘)에 제사지낼 때에는 강사포(絳紗袍 ; 붉은 빛깔로 된 견직물의 옷)를 입는다 하고 있습니다. 또 고사에 이르기를 한번 물들인 빛깔을 강색(絳色)이라 한다 합니다.
그러므로 제왕의 복색은 예식을 갖출 때에는 황(黃 ; 노란 빛깔), 자(紫 ; 자주빛깔), 강(絳 ; 짙은 붉은 빛깔) 3가지 빛깔이여야 하고, 연회나 작은 모임 때에는 편의대로 할 것이나, 지금 입으시는 홍색(紅色), 황색(黃色) 외에는 대신 할 만한 다른 빛깔은 없아옵니다’ 고 하였다. 따라서 1077년 고려 문종 때에 이르러 일반인에 대해 황색으로 된 의복 착용을 나라에서 금지하기도 하였다.
▣ 고려시대의 섬유 육성정책
고려의 태조 왕건은 918년 임금으로 즉위한 즉시 영을 내려 3년간 전조(田租 ; 세금)를 면제해주면서 까지 농상(農桑 ; 농업과 양잠산업)을 권장하는 등 ‘먹거리’ 창출과 함 ‘입을거리’ 생산을 국가의 주요 시책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983년 고려 성종도 ‘짐이 몸소 신농씨(神農氏)에게 제사하고, 후직(后稷 ; 중국 주나라의 시조로서 농예법을 마들었다고 전하여 짐)에게도 배향’하겠다고 하는 등 섬유 등의 농상정책을 크게 강화하기도 하였다. 또한 985년 고려 성종은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만일 나라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려 한다면 다만 삼농(三農)의 일할 시기는 절대로 빼앗지 않아야 될 것이다...
따라서 모든 관리는 봄부터 가을까지 백성들에게 부여하는 모든 잡무는 정지하고 오로지 농사만 장려하는 데 힘 써야 할 것이다. 장차 사자(조사관)를 현지에 보내 조사하여 그 부지런하고 태만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물어 꼭 신상필벌하겠다’고 하였다 한다.
또한 987년 고려 성종 때, 이양이 상소를 올리기를, ‘월령에 의하면 입춘 전에 토우(土牛 ; 흙으로 소의 형상을 만들어 봄을 맞이하던 옛날 풍속)로 하여금 농사의 이름과 늦음을 보였으니, 청컨대 고사에 의하여 제 때에 맞추어 이를 행해야 할 것입니다. 주례에 정월에 왕후에게 명하여 육궁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늦 벼와 올 벼의 종자를 싹 티워서 왕에게 바치게 한다고 하였읍니다. 지금 주상께서는 풍년을 빌고 적전(籍田)을 가는데 있어 왕후도 반드시 종자를 바치는 예를 행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 월령에, 정월 중기 후에는 희생에 암 짐승을 쓰지 말고,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고, 새끼와 알을 취하지 말고, 여러 사람을 모으게 하지 말고, 드러난 해골을 덮어 묻어 주라고 하였사오니, 원컨대 봄에 행할 일의 영을 펴서 모두 절후에 따라 금지할 조항을 알도록 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의 말을 따라 교서를 내려 서울과 지방에 반포(頒布)하여 전국에 알리게 하였다.
1012년 고려 현종은 ‘요즈음 사람들이 부박(浮薄)하게 살려는 것이 습속이 되어버려서 본업인 농업을 버리고, 말업(末業 : 상업)에만 힘써 농사지을 줄을 알지 못하니 여러 도(道)의 잡직과 장수(匠手)들을 모두 줄여서 농업에 종사하게 하라’ 고 하였으며, 1016년 고려 현종은 ‘강남의 군, 현에 지난 해에 흉년이 들어 백성 중에 굶주리고 헐벗는 사람이 많으니 소재지의 관아에서는 양식과 종자를 주어 농잠을 권장하라’고 명하는 등 고려의 여러 임금은 수시로 농업과 잠업 장려를 적극 강화하기도 하였다. 1028년 고려 현종은 각 도의 주현(州縣)에 영을 내려 매년 상묘(뽕나무 묘목) 15∼20주씩을 밭머리에 심도록 하였다.
1033년 고려 덕종은 ‘농사짓고 누에 치는 것과 옷 입고 밥 먹는 것은 나라의 근본이니, 모든 도와 주, 현의 관리들은 힘써 조정의 명령에 따라 농정의 삼시(三時 ; 농사 시기)를 놓치지 말고, 만백성을 편안케 하라’고 하였으며, 1034년 고려 덕종은 또한 농상은 의복의 근본이니 농민이 주력하도록 하라는 교시를 내려 재차 농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한다.
- 다음호에 고려시대의 의복풍속....②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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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TIN뉴스 박원호 영남지사장(논설위원 겸직)(whpark@tinnews.co.kr)
출 처 : 2015.11.13. TIN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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